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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공간/잠깨는 글

어렸지만 행복하게 지냈던 그 날들

by Vellena 2024.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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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e beside sun

 
 
따뜻한 햇살이 나무 사이로 은은하게 내리쬐고 어느때와 같이 선선한 봄 향기를 코로 맡을 수 있었던 그날. 학교에 도착하니 바닥에서 슾하고 왁스로 탁하진 나무 냄새가 났다. 이 반도 마지막이다. 반 친구들이랑 같이 잘지냈거나 아쉽다고는 말을 못하겠다. 나는 그때 잘난척도 잘하고 친구들에게 화도 잘내서 반 친구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반을 떠나는 마음과 새로운 반에 대한 약간의 기대만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린 나는 다음에 무엇이 올지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마지막 고학년 반배정을 받으며 나는 짝궁인 그녀를 처음 만났다. 처음 만난 어린아이들이 서슴없이 금방 친해지는 것처럼 나도 그 짝궁이랑 친해졌다. 오래전의 기억이라 지금은 기억이 안나지만 그 여자랑 영어, 책, 외국 생활 이런 이야기를 주로 했던것 같다. 이때는 반기문이 대한민국 최초로 유엔 총장이 되고 뭔가 나라가 외국 삶에 대한 희망이 넘치던 시기였다. 마침 나는 몇달 해외여행을 잠깐 한적이 있어서 뭣도 모르면서 거짓 진짜 섞어가며 이야기 했던것 같다. 그때 나는 매일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그날을 회상해보면 학교가 등굣길 내리막길에 있었는데 그 길을 뜀박질하고 뛰어갔고 누구보다 빠르게 학교에 도착하여 왁스 냄새에 취해 있었다.


당시 나는 아직 사랑이 뭔지 모르던 때라 이게 좋아하는건지, 그냥 친구인건지, 분간이 잘 서지 않았다. 초등학생이 어떻게 사랑을 아나? 20대 후반인 지금도 모르는데... 그러던 중 그녀가 병으로 인해 학교를 오지 못했다. (아 너무 클리쉐인가?) 사실 이건 내 기억이라 병이 아니고 실제론 어떤 이유에서인지 학교를 계속 나오지 않았다는 기억만 어렴풋이 남아 있다. 처음엔 뭐가 없어졌는지 몰랐지만 나중에서야 삶에서 뭔가가 사라진것을 느꼈다. 뭘해도 재미가 없고 그냥 뭘하면 짝궁이 올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며 나의 옆자리는 다른 친구로 매꿔 졌고 그리고 어린아이들의 싸움과 웃음 재미로 채워졌다.


나는 그렇게 기다리던 중, 중학교를 배정받는 때가 가까워져서야 그녀를 봤다. 늦게 오던 나는 지각해서 그녀가 다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항상 그러지만 바라던 것은 예기치 않을때 오더라. 내가 따로 말을 걸려고 하자 그때 반 분위기가 이상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다 그녀와 나를 향해 쏟아졌다, 내가 오랜 시간을 음침하게 기다렸던 것이 티가 났던 것일까 친구들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갑자기 이상한 대우를 받아야했던 그녀는 움츠려 들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용기를 내야했었다. 지금은 그렇게 해석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렇게 눈치가 많은 사람이 아니여서 그냥 반가워서 갔다. 수없이 많이 쏟아지는 속닥거림과 눈빛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그녀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나누긴 했고 어쩌다 그녀가 "우리 친구로 지내자"라는 말을했었던 것 같다. 나는 이후로도 자리가 달라서 그녀랑 따로 말을 걸 기회는 없었다.


지금은 여자 친구도 사귄적이 있고 다른 여자랑 잘지내서 신경은 안쓰지만 이 기억은 오랬동안 남아 있다. 그냥 단순히 순수하면서 따뜻했던 감정이 허용되었던 시기라 오래남았던 것 같다. 지금은 위아래 규칙이 많이 깨지고 감정적인것보단 팩트 위주로 바뀌어버린 시대라 이런게 많이 사라지고 왁스 칠해진 더러운 나무바닥도 사라지지 않았나 그래서 이 경험도 영원히 사라질것 같아 예전의 기억을 살려서 각색해봤다. 각색된 기억이고 오래 갈필요 없고 별거 없지만 생각보다 나랑 비슷한 시대에 살던 친구들은 이런경험 가지고 있다 하더라.
 

korean school wax flo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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